조선비즈 | 최규민 기자 | 2016.04.27 03:11
미국 3대 메이저 석유 업체인 코노코필립스가 호주 북부 다윈시에 건설한 액화천연가스(LNG) 처리 시설에 대형LNG 운반선이 정박해 있다. 최근 에너지 가격이 급락하면서 지난 10여년간 붐을 이뤘던 호주 천연가스 개발 사업도 큰 타격을 입었으나 호주 경제는 서비스 산업 활성화 등에 힘입어 지난해에도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나갔다.
지난 11~15일 호주 퍼스에서 열린 'LNG18' 행사장. 3년마다 열리는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업계의 최대 행사이지만, 분위기는 지난번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서 열린 'LNG17'과는 사뭇 달랐다. 3년 전에는 '수요 증가' '밝은 미래' '새로운 시장과 소비자' 같은 단어가 주를 이룬 반면, 이번에는 '인내심' '반등' '희망' 같은 단어가 주로 언급됐다. 전 세계 60개국에서 참석한 250여 회사 관계자는 LNG 가격이 회복될 때까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다. 세계 최대 LNG 수출국인 카타르의 하마드 알 무하나디 라스 가스 최고경영자(CEO)는 발표자로 나서 "가격이 반등할 때까지 앞으로 5~6년간은 힘든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닫는 광산, 취소되는 자원 투자 계획
2000년대 이후 LNG 시장은 장기 호황을 누렸다. 한국, 일본,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수요가 크게 늘면서 전 세계 LNG 수출량은 2000년 1억t에서 2014년 2억4000만t으로 급증했다. LNG 가격도 100만BTU(천연가스 거래 단위)당 3달러 선에서 15달러 선까지 올랐다. 그러자 풍부한 천연가스를 보유하고도 관심을 갖지 않던 나라들이 LNG 시장에 속속 뛰어들었다. 호주도 그중 하나다. 천연가스 매장량이 1조㎥인 호주는 외국 에너지 기업들의 투자를 받아 해안 곳곳에 LNG 시추·생산 시설을 건설했고, 금세 세계 2~3위권 LNG 수출국으로 발돋움했다. 여기에 새로운 투자가 속속 밀려들면서 2018년 무렵이 되면 호주가 카타르를 제치고 세계 최대 LNG 수출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지난 1~2년 사이 상황은 급변했다. 최근 아시아 시장에서 LNG 가격은 4달러 선까지 떨어져 연초 대비 40%, 최고치였던 2014년 2월에 비하면 80% 가까이 폭락했다. 중국의 경기 둔화에 따른 수요 감소, 석유·석탄 같은 대체재 가격의 하락, 공급 과잉, 신재생에너지 시장의 확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에 따라 호주의 천연가스 시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호주 최대 석유 개발 회사인 우드사이드는 로열더치셸, BP, 페트로차이나 등 메이저 정유사들과 함께 진행하려던 40억달러 규모의 브라우즈 가스전 개발 사업을 취소한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피터 콜먼 우드사이드 CEO는 "가격이 이런 상황에서 투자를 진행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해양 플랜트 수주에 성공하며 개가를 올렸던 삼성중공업의 노력도 함께 수포로 돌아갔다.
그래도 동일본 대지진 여파로 최근까지 호황을 누렸던 천연가스 시장은 호주의 다른 원자재에 비하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호주의 경제성장을 이끌어왔던 철광석과 석탄 광산은 이미 2014년부터 대규모 감원과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호주 최대 광산 업체인 리오틴토는 지난해 벵갈라 석탄 광산 지분 40%를 6억달러에 매각하고 올해 지출을 지난해보다 10억달러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BC아이언이라는 이름의 중소 철광석 광산 업체는 2011년 t당 180달러에 육박했던 철광석 가격이 지난해 말 40달러 선 아래로 떨어지자 "아무리 노력해도 수지 타산을 맞출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탄광을 폐쇄했다. 바닥을 찍은 철광석 가격은 최근 이상 급등세를 보이며 70달러 선까지 올랐지만, 장기적 전망은 여전히 밝지 않은 편이다. BHP빌리턴 등 호주 철광 업체 관계자들은 파이낸셜타임스에 "중국에서 저가 물량이 쏟아지면 머지않아 다시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선방하는 호주 경제… 가계 부채는 부담
주력 산업 중 하나인 원자재 산업이 휘청거리고 있지만, 호주 경제는 러시아나 브라질 같은 여타 자원 수출국과 비교하면 '자원의 저주'(원자재를 둘러싼 분쟁 또는 자원 부국들이 지나치게 자원에만 의존하다가 경제가 타격을 입는 현상)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선방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호주의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 성장해 전문가들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광산 업종에서 벌어진 대규모 구조조정 영향으로 한때 6.4%까지 치솟았던 실업률도 지난달 5.7%까지 낮아졌다. 미국 달러당 0.7달러 밑으로 떨어졌던 호주달러의 가치도 상승세다. 전망도 나쁘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보고서에서 통화 가치 하락 등의 도움으로 호주 경제가 올해는 2.5%, 내년에는 3%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호주 경제가 자원의 저주를 비켜 간 이유는 다변화되고 자유화된 경제 구조 덕분이다. 호주는 흔히 자원 수출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GDP의 80%를 차지하는 것은 금융·관광·교육 등 서비스업이다. 서비스업의 발달은 외부 여건이 어려운 시기에 내수를 떠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한국·일본과 자유무역협정(FTA) 등 적극적인 개방 정책, 시장에 맡기는 자유로운 환율 변동도 경제의 복원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다. 금리 인하에 따른 부동산 시장 호황도 한몫했다. 하나금융투자 박승진 연구원은 "원자재 의존도가 높았던 기존 호주 경제 구조가 내수 활성화를 통해 좀 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증가하는 가계 부채는 부담스럽다. 저금리와 부동산 호황 영향으로 가계 부채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호주의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123%에 이른다. 한국(87%)을 비롯한 주요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국 경제 주간지 포브스는 앞으로 3년 안에 채무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취약 7개국'으로 한국, 중국, 스웨덴, 캐나다, 홍콩, 노르웨이 등과 함께 호주를 꼽았다. 정부 부채는 아직 낮은 수준(GDP 대비 35%)으로 유지되고 있지만, 증가세가 빠르다는 것이 걱정거리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호주의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지난 10년간 장기적이고 현저하게 늘었으며, 이는 호주의 국가 신용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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