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사우디아라비아가 드디어 외국인 관광객에게 빗장을 풀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강력 추진 중인 경제 개혁 ‘비전2030’의 일환이다. 무인기(드론) 피격을 당한지 불과 2주 만이어서 주목된다.
BBC, CNBC 등 주요 외신들은 26일(현지시간) “사우디가 사상 첫 관광 비자 발급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새로운 변혁 시도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사우디는 그동안 외국인의 경우 메카 성지 순례자, 사업가 및 근로자 등에게만 극히 제한적으로 비자를 발급해줬다. 하지만 이번에 관광 비자를 신설, 일반인들에게도 사우디 방문을 허용키로 한 것이다.
알 카티브 사우디 관광장관은 “49개국 관광객을 상대로 비자 발급을 시작할 예정”이라며 “사우디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이 5곳이 있다. 방문자들은 우리가 공유키로 한 보물, 숨 막히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동감 넘치는 지역문화에 놀라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광 비자 신설은 무함마드 왕세자가 야심 차게 밀어붙이고 있는 비전2030 개혁의 일환이다. 오는 2030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수준인 관광 산업을 1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성지 순례 방문객 연간 3000만명을 포함해 매년 해외 및 중동 방문객 1억명을 달성하겠다는 복안이다.
사우디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호텔, 리조트를 새로 짓는 한편, 공항, 렌터카 등 다양한 사업들도 병행해 추진하고 있다. 사우디는 또 남성 동행자 없는 여성의 개인·단체 여행도 허용키로 했으며, 공항 내 여성 관광객 복장도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다만 BBC는 “(사우디 전통 종교 의상인) 아바야나 챠도르를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겸손한 복장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발표 타이밍이 오묘하다. 우선 반(反)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 1주년을 목전에 두고 있다. 사우디 왕실을 비판하는 칼럼을 써왔던 카슈끄지는 작년 10월 2일 터키 이스탄불 내 사우디 총영사관에 들어간 뒤 행방이 묘연해졌고, 살해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배후엔 사우디 왕실이 있다는 추측이 잇따르고 있다. 국제적 비판이 거세질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시선을 돌리기 위한 조치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아울러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여행을 와도 안전한 나라’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라는 해석도 있다. 지난 14일 사우디 핵심 석유시설에 대한 드론 공격으로 중동 내 군사 충돌 우려는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언제 이란과 전쟁을 벌일지, 언제 또다른 드론 또는 미사일 공습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급작스럽게 외국인 관광객 유치 카드를 꺼내든 것은 지정학적 리스크 우려를 잠재우기 위한 것이란 얘기다.
이는 비전2030 개혁의 성패가 사실상 해외 민간투자 유치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의 석유 부문은 GDP의 40%, 재정수입의 9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 구조는 유가 하락시 재정에 직격탄을 입게 된다. 실제로 지난 수년 간 이어진 저유가 기조로 사우디 곳간은 여유가 없는 상태다. 하지만 CNBC는 “두 사건은 외국인 투자자들로 하여금 무함마드 왕세자의 비전2030 개혁에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일각에선 지난해 사우디 여성의 축구장 입장, 자동차 운전 허용 등에 이어 기존 관습을 타파하는 또다른 정책이어서 긍정적인 평가도 나온다.
방성훈 (ba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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