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 | 이진명 | 2016.01.11 09:28
미국의 시선이 다시 동쪽으로 옮아갔다. 중동에서 아시아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6년 2월 캘리포니아주 란초 미라지의 휴양지인 서니랜즈에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를 주최하기로 했다. ASEAN은 필리핀·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네시아·태국·브루나이·베트남·라오스·미얀마·캄보디아 10개국이 회원이다. ASEAN 정상회의는 역내 국가들이 개최하는 것이 보통이고 통상 ASEAN+3(한·중·일) 회의가 함께 열리므로 한국·중국·일본이 주최한 적이 있지만 뜬금없이 미국에서 열리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미국이 ASEAN 정상회의를 개최하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은 상당한 공을 들였다. 2015년 11월 ASEAN 정상회의가 열린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직접 찾아 ASEAN 각국 정상들과 회동해 설득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처럼 ASEAN 정상회의 유치에 각별히 공을 들이는 것은 본인이 주창하고 추진한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화룡점정’이기 때문이다. 임기 마지막 해 첫 국제행사로 태평양 건너 동남아 국가들의 정상을 초청함으로써 오바마 정부가 아시아에서 외교적 입지를 확고히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 상징적 행사가 될 수 있다.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핵심은 중동과 유럽 등지로 분산된 미국의 외교·경제적 자산을 아시아로 되돌린다는 개념이다. 이를 통해 북미와 유럽에서 약화된 미국의 위상과 힘을 아시아에서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아시아는 미국의 신흥 시장으로서, 그리고 새로운 자원과 노동력 공급의 원천으로서 중요한 지역이다.
TPP 진전 촉구, 中 일대일로 견제
중동 실패 대신 외교 평가 높이려
하지만 그 배경에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짙다. 특히 안보와 경제 분야에서 ‘패권적 굴기’ 양상을 보이고 있는 중국의 급속한 부상은 미국이 느끼는 최대 위협이다. 이를 견제할 양대 수단이 바로 우방국과의 관계 강화,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다.
때문에 2015년 11월 쿠알라룸푸르 ASEAN 정상회의는 물론이고 2월에 미국에서 열릴 ASEAN 정상회의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의 주요 메시지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맞서는 협력 방안이다. 동남아국가들과 합심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미국의 노골적인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또 다른 메시지는 TPP 진전 촉구다. TPP에는 이미 말레이시아·베트남·브루나이 등 ASEAN 4개국이 회원으로 참가하고 있는데 이들 국가에서 의회 비준을 재촉하는 동시에 추가 가입을 독려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인도네시아와 태국, 필리핀 등이 추가 참가 의향을 내비쳤다.
미국이 전통 우방인 한국, 일본에 더해 ASEAN 국가들과의 협력관계를 심화하면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을 견제할 수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은 중앙아시아를 통한 육로와 동남아시아를 통한 바닷길을 이용해 서쪽으로 진출하는 것인데 미국이 ASEAN 국가들과 협력해 중국을 견제한다면 중국의 바닷길 진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미국이 한·일 위안부 합의를 그토록 환영하고 합의 성사를 위해 오랫동안 물밑 노력을 기울여온 것도 아시아 재균형 정책과 중국 견제의 또 다른 축으로 해석된다. 미국 국무부 고위 관료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TPP 합의에 버금가는 성과”라고 평가한 것에서 그 속내를 짐작할 수 있다.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과 TPP의 공통점은 바로 미국이 중심에 서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아시아에서의 패권을 키우는 수단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아시아에 공을 들임으로써 얻는 부수적인 효과로는 중동 정책 실패를 희석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슬람국가(IS)의 세력 확장과 잇따른 테러로 중동 정책에 실패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중동에 쏠린 미국인의 시선을 아시아로 옮김으로써 전반적인 오바마 정부 외교 정책에 대한 평가를 끌어올리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letswi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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