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준 기자
에어버스 불법 보조금 문제를 두고 다투던 미국과 유럽을 두고 세계무역기구(WTO)가 미국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정작 승리와 관세 명분 둘 다 챙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의외로 잠잠하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화력을 집중하는 모양새다.
2일(현지시간) WTO는 유럽연합(EU)이 유럽 항공기 제조업체인 에어버스에 불법 보조금을 지급한 사실을 인정하고, 미국이 연간 75억달러(약 9조원) 규모의 유럽산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할 권리를 부여했다.
이같은 결정 후 곧바로 미 무역대표부(USTR)는 오는 18일부터 EU에서 생산된 항공기에 10%, 농산물 등은 25%의 징벌적 과세를 매기겠다고 발표했다. 와인과 위스키 등 주류부터 치즈나 버터 같은 유제품, 의류와 기계들이 관세리스트에 올랐다.
하지만 정작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판정에 대해 언급은 했지만 떠들석한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그는 그동안 유럽에 관세를 매기겠다며 트위터를 비롯한 각종 방법을 동원해 여론전을 펼쳐왔다. 지난 4월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EU가 에어버스에 보조금을 준 것을 WTO가 찾아냈다'면서 EU에 110억달러어치 관세 부과 경고를 날렸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 백악관에서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후 열린 공동 기자회견장에서 미국이 지난해 EU로부터 1693억달러의 무역적자를 봤다고 불평하면서 'EU에 뭔가를 해야한다', '그들은 수년간 우리를 부당하게 대우했다' '오늘 미국은 큰 승리를 했다' 등 발언을 했다. 하지만 이 발언도 니니스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암시하며 '미국에는 위대한 민주주의가 있으니 이를 지속시켜달라'고 말하자, 갑자기 화제를 돌리면서 무역 문제가 거론됐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 내내 탄핵 관련 질문을 받았고, 끝내 분노를 표출하고 퇴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 기자가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바이든 부자와 관련 무엇을 하길 원했는지 정확히 밝혀달라고 말하자 '지금 내게 질문을 하는거냐?'며 화를 냈고, 이후에도 '내 말을 듣고 있나, 내 말을 듣긴 하는 건가, 그(니니스퇴 대통령)에게 질문을 하라'고 한 뒤 홀로 퇴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자신의 트위터에도 WTO의 판정이나, EU산 수입품 관세 부과 등의 내용은 언급하지 않은 채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연루된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민주당을 집중 공격하는 데만 치중했다.
전날 무역전쟁으로 부진한 미국 경제지표가 발표된 데다가, 특히 이러한 경향이 선거 경합주에서 강해 유권자들의 불만이 세지고 있는 점도 트럼프 대통령이 대놓고 EU전 승리를 자랑하기엔 부담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은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간신히 승리한 경합주 위스콘신, 미시건, 펜실베니아 3개주가 무역전쟁으로 경제지표가 나빠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겐 또다른 위기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전날 미국이 발표한 지난달 제조업 PMI(구매관리자지수)는 47.8로, 전월 49.1보다 떨어졌다. 이중 3개주는 제조업 고용 성장률이 마이너스대로 떨어지면서 침체가 가속화하는 모양새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EU에 관세를 부과하기 보다 협상을 맺고 확전을 멈춰야 한다고 전했다.
미 무역대표부도 WTO가 허용한 보복관세율의 일부만 에어버스에 부과한 채 협상의 문을 열어놨다. 미국과 EU는 오는 15일 무역협상에 돌입한다.
앞서 미국은 2004년 프랑스, 독일, 스페인, 영국 등 4개국의 항공기 보조금 지급으로 자국 업체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며 WTO에 제소했다. 미국은 에어버스에 제공되는 수십억 달러의 불법 보조금 혜택으로 연간 112억달러(약 13조5000억원)의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강기준 기자 standar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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