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와 벽 쌓는 미국.. 그 틈새 뚫고 영향력 키우는 중국
파이낸셜뉴스 | 송경재 | 2018.02.11 17:55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 우선주의'를 앞세워 동맹들과 잇단 마찰을 빚으며 벌어진 틈을 중국이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중국의 손길은 미국 앞마당 중남미까지 뻗치고 있다.
CNN머니는 10일(이하 현지시간) 중국이 중남미에서 미국의 빈자리를 빠르게 메우고 있다면서 미국이 발을 빼는 가운데 중국은 이 지역내 영향력을 계속해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보도했다.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은 중국이 그동안 불공정 무역의 대명사였던 반면 미국은 자유무역 옹호주의자였던 점에 비춰보면 이는 "세상이 뒤집힌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 신뢰 잃는 미국
미국과 중국의 엇갈리 행보는 지난달 22일 사례가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날 왕이 중 외교부장은 칠레에서 열린 중남미 정상들이 참석한 한 콘퍼런스에서 중국과 중남미가 자유무역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면서 "보호주의에 맞서 싸우고 개방된 세계경제를 위해 노력하자"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한국, 멕시코, 브라질 등에 여파를 미치게 될 세탁기, 태양패널에 대한 세이프가드를 선언했다. 보스턴대 글로벌개발정책센터(GDPC) 소장인 케빈 캘러거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는 말로, 또 상징적으로도 중남미와 벽을 쌓고 있"지만 "중국은 (관계강화라는) 가교건설을 제안하고 있고, 실제로 다리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미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중남미 지역에서 계속해서 자충수를 두고 있고, 중남미가 등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예산안에서 중남미 지원을 35% 삭감하는 방안을 제출했다. 2001년 이후 가장 낮은 지원규모가 되는 것이었다. 상원에서 대부분의 삭감이 기각됐지만 트럼프의 바람대로 됐다면 중남미 지역의 교육, 질병관리, 마약운송.코카인 생산 억제 프로그램이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4월 조지 H. 부시 대통령이 중남미 지원을 위해 창설한 미주개발은행(IADB)의 개발프로그램 기부 연장을 거부하기로 결정했고, 10월에는 중남미 융자에 집중하는 세계은행(WB)의 기금확대 요청을 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멕시코 장벽 설치 비용을 멕시코가 부담해야 한다고 압박해 중남미 각국의 원성을 사고 있고, 미국내 합법적인 중남미 출신 이주 노동자 수만명 추방을 위협하고 있고, 브라질, 아르헨티나, 콜럼비아에는 관세폭탄을 안기고 있다.
중남미 인권.민주화.경제정의에 관한 비정부기구(NGO)인 중남미워싱턴사무국(WOLA)의 애덤 아이잭슨 이사는 "중남미더러 알아서 하나는 메시지"라면서 "이는 중남미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면 중국에는 커다란 기회인 셈이다"라고 말했다.
■ 영향력 키우는 중국
미기업연구소(AEI)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에만 중남미에 230억달러를 쏟아부었다. 2010년 이후 최대 규모다. 중남미 천연자원 확보를 위해 태평양으로 향하는 이 지역내 철도부터 교량, 항만 건설에 이르기까지 인프라스트럭처 건설에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
이미 중국은 지난 10년새 브라질,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의 최대 교역상대국이 됐고, 이 지역의 콩, 옥수수, 철광석 등 원자재 주요 수입국이 됐다. 중남미 국가들의 부패, 저항, 기술부족 등으로 니카라과 운하 건설, 멕시코 고속열차 건설, 베네수엘라 철도.석유 투자 등이 실패했지만 투자는 계속되고 있다.
왕 외교부장은 지난달 22일 칠레 콘퍼런스에서 중남미가 현대판 실크로드가 될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이미 자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통해 중남미에 차관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아직은 중남미 내 세력판도가 미국에 훨씬 유리하고,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도 대통령이 중간 중간 찬물을 끼얹지만 중남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중남미는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중국보다는 미국과 더 가깝고, 맥도널드, 셰브론 등 멕시코, 콜롬비아를 비롯한 중남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미국 기업들 역시 무수히 많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비롯해 미 행정부 주요 관리들이 잇달아 중남미를 방문하는 등 미 영향력을 잃지 않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CNN머니는 그러나 틸러슨이 이튿날 멕시코 대통령을 만나고 있는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엘살바도르.과테말라.온두라스를 콕 집어 거명하며 "이들 국가는 (미국으로 마약을 보내기 때문에) 미국의 친구가 아니다"라고 초를 쳤다고 전했다.
워싱턴의 리서치 그룹 미주다이얼로그(IAD)의 중.중남미 전문가인 마거릿 마이어스는 "트럼프 행정부가 취하는 위협적인 접근은 중국이 스스로를 돋보이게 만드는데 이용당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