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법인세 21%로 인하..기업엔 조세천국 기업·자본 '블랙홀'..조세패권주의에 초비상
매경이코노미 | 황인혁 | 2018.01.02 09:21
31년 만의 대규모 감세안이 드디어 미 의회 최종 관문을 넘었다. 향후 10년간 1조5000억달러(약 1630조원) 감세 효과를 가져다줄 이번 세제 개혁 법안을 통해 미국 조세패권주의 포문이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번 법안 통과는 많은 기업의 귀환을 의미한다”며 “미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감세”라고 치켜세웠다.
최종 확정된 세제 개편안은 현행 최고 35%인 법인세율을 21% 단일세율로 낮추고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을 39.6%에서 37%로 내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 의회 합동조세위원회(JCT)는 오는 2019년을 기준으로 미국 전체 가계의 48%가 500달러 이상의 세 감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송환세 시행 땐 자금유출·외환시장 출렁
미 감세안의 파장은 미국 내에만 머무는 게 아니다. 글로벌 기업과 자본을 한껏 빨아들이려는 미국의 시도로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바짝 긴장하게 됐다. 지금까지는 미국 밖으로 이익을 빼돌리는 미국 기업이 많았지만 2018년부터 사정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애플, 구글, MS 등 상당수 미국 기업들이 조세피난처를 활용해온 것은 35%의 높은 법인세율을 피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미 법인세가 21%로 뚝 떨어지면 프랑스(34.4%), 일본(23.4%), 한국(22%)보다 낮아지고 상당한 조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트럼프 정부는 일명 ‘송환세’로도 불리는 환류감세조치(repatriation tax)를 통해 미국 기업들이 해외에 쌓아둔 막대한 이익잉여금을 본국으로 대거 송환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금까지 미 다국적 기업들이 해외에 쌓아둔 이익잉여금은 2조5000억달러(약 27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 법인세율(21%)보다도 낮은 15.5%(현금 등 유동자산 기준)의 낮은 세율을 일회성으로 적용하면 미국 기업들이 해외 이익금을 미국으로 들여올 개연성이 높아진다. 미 기업들이 현지 통화를 달러로 환전해 미국으로 송금하는 과정에서 현지 통화가치가 일시적으로 급락할 수도 있다.
미 감세안은 기계장치 등에 대한 감가상각을 투자 당해 연도에 100% 비용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감가상각은 비용으로 인식돼 기업이익이 줄어들고 법인세 부담도 그만큼 작아진다. 기업이 영업이익을 많이 낸 해에 대규모 설비 투자를 단행해 법인세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미국에서 제조업을 하는 기업에는 유용한 카드가 될 수 있고, 미 정부로서는 투자를 앞당길 수 있는 유인책이다.
미국이 또 하나 주목하는 효과는 ‘지식재산권 강국’의 위상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미국 기업들은 해외 조세피난처로 특허·상표권 등 고부가 지식재산권을 이전해 해외에서 로열티 수입을 발생시켰다. 때문에 미국은 기라성 같은 테크·제약기업을 배출하고도 이들 기업의 이익이 해외에서 맴도는 현실을 지켜봐야만 했다. 만약 미국 기업들이 돈 되는 무형자산을 본국에 놔두고 해외 기업으로부터 로열티 수입을 받아내면 37.5%를 공제해주기로 했다. 이에 따라 21% 법인세율이 아닌 13.125%의 한결 낮은 세율이 적용된다.
하원안에 담겨 있던 일명 ‘특별세(excise tax)’라는 독소조항은 최종 심의 과정에서 빠졌지만 세계 각국 정부와 다국적 기업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는 적잖은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미국의 파격적인 법인세율 인하와 송환세 시행으로 중국에 머물러 있던 다국적 기업들의 막대한 자금이 미국으로 순식간에 유출될 경우 위안화 급락 충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 법인세 역전이 현실로 다가온 만큼 한국도 미 감세안 충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ihhwang@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