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의 화려한 부활.."리플레이션은 유럽으로 이동중"
신기림 기자 = 올해 외환 시장에서 최대 '서프라이즈'는 유로의 부활이다. 지난 1월에만 해도 유로는 조만간 달러와 패리티(등가, 1유로=1달러)를 이루며 떨어질 것이라고 외환 딜러들은 입을 모았다. 정치 불안, 낮은 인플레이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양적완화, 왜소한 경제 성장세까지 모두 유로를 끌어 내리는 요인들로 거론됐다.
하지만 이제 유로는 지난해 1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견조한 경제 지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당선, 유럽 자산으로 쏟아지듯 몰려드는 자금까지, 이제는 모든 재료들이 유로를 지지하는 중이다. 연초와 비교해 상전벽해다.
올 들어 유로는 달러 대비 7% 올라 주요 10개국(G10) 통화 가운데 수익률 1위를 달리고 있다. 우리시간으로 23일 오전 8시25분 유로는 1.1183달러에 거래됐다.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들은 "유럽으로의 회귀"를 상징한다고 평가했다. 최대 촉매제는 마크롱의 당선이다. 중도 성향의 마크롱이 반유로의 극우 성향 마린 르펜을 이기면서 유로존 정치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한풀 꺾였다. 유로존 경제 역시 1분기 0.5% 성장하며 시장을 지지했다.
게다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2일 유로에 대해 "너무 약하다"고 언급하면서 유로를 끌어 올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메르켈 총리의 발언에 대해 " 그 동안 유로 약세로 가장 큰 수혜를 받은 독일이 유럽 성장을 핵심부에서 주변부로 확대해 균형을 이룰 의지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뉴거버거버만의 우고 랑치오니 외환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유럽 지표가 고무적이며 당장 정치 리스크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로에 대한 순 매수세(롱포지션)은 3년 만에 최고로 올랐다.
유로의 질주를 막는 재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 부채탕감이 다음달로 미뤄졌다. 6월에는 프랑스 총선이 있다. 마크롱이 얼마나 많은 의석을 얻어 정책 추진력을 확보할 지 주목해야 한다.
9월에는 독일 총선이 예정돼 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유로존 재정부양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한 큰 그림이 그려진다. 같은 달 유럽중앙은행(ECB)이 테이퍼링(점진적 긴축) 신호를 처음으로 보낼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적으로는 메르켈과 마크롱이 어떤 관계를 유지할지가 유로의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다.
유로 강세는 투자자들의 신뢰와 해당 경제지역의 자신감을 상징하지만 유로존 수출업계에는 잠재적으로 부담이다. 로드리고 카트릴 내셔널오스트레일리아은행 외환전략가는 "유로가 ECB를 불편하게 만들 만큼 급격하게 올랐다"며 "ECB가 인플레이션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유로 강세는 이러한 노력을 와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슈들은 차후의 일들이다. 당장은 유럽 자산으로 자금이 밀물처럼 들어 오고 있다. 알베르토 갈로 알제브리인베스터스 매크로 전략가는 유로 붕괴라는 리스크 프리미엄이 사라졌다며 "역설적이게도 정치 리스크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 갔다"고 말했다.
제인 폴리 라보방크 외환전략가 역시 유로 강세가 수출을 압박할 수 있다는 전망은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추정한 구매력 기준 공정한 유로 환율을 1.25달러이다. 추가 상승할 여력이 있다.
알제브리스의 갈로 전략가는 "모두가 '리플레이션이 죽었나?'라고 묻고 있다"며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아니오, 유럽으로 옮겨 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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