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2일 오전 11:06
캘리포니아 기름값 대란의 교훈…환경정책 지나치면 오히려 부작용 매경이코노미 | 2012.11.12 09:37
관련종목 시세/토론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환경기준을 엄격히 적용하는 '환경 친화적인 지역'으로 유명하다. 미국 전체 판매량으로 보면 7위에 불과한 프리우스가 캘리포니아에서는 가장 잘 팔린다. 친환경 하이브리드카이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태양광 등 대체에너지를 사용하는 비율도 미국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높다. 캘리포니아에서 사용하는 자동차 휘발유도 남다르다.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환경기준을 적용해 매연 발생량을 최소화한 휘발유만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친환경에 대한 과도한 집착(?) 때문에 캘리포니아는 지난 10월 한 달간 천정부지로 치솟은 기름값에 몸살을 앓았다. 10월 초 캘리포니아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평균 5달러에 육박,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다. 로스앤젤레스 등 캘리포니아주 일부 도시의 경우 기름값이 갤런당 6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당시 미국 평균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3.8달러 선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30~50% 더 높은 기름값을 지불했던 셈이다.
기름값 대란의 발단은 휘발유 공급 차질이었다. 지난 8월 샌프란시스코 인근 셰브론 원유 처리 공장 화재로 휘발유 생산이 대폭 감소한 상태에서 10월 1일 로스앤젤레스 인근 엑슨모빌 토런스 정유소에 정전이 발생해 휘발유 생산량이 더 쪼그라들었다. 다른 지역에서 생산한 휘발유를 들여오면 공급 부족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게 쉽지 않다. 캘리포니아에서 사용하는 휘발유가 다른 주에서 사용하는 휘발유와 품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정은 다음과 같다.
미국에는 주마다 휘발유 환경기준이 달라서 총 50~70종류의 휘발유가 사용된다. 모든 주에서 환경기준을 최고로 높여 매연 배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휘발유를 사용하면 좋겠지만, 그러려면 그만큼 기름값이 비싸지는 것은 당연지사. 따라서 미국의 각 주들은 주 상황에 맞게 선택을 한다. 기름값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게 중요하다고 보는 주정부는 대기오염을 어느 정도 감수할 것이고 환경을 더 중시하는 주는 엄격하게 휘발유 품질을 규제할 것이다. '낮은 휘발유 가격이냐 아니면 강력한 환경규제냐'라는 스펙트럼의 양단에서 친환경 극단에 서 있는 것이 바로 캘리포니아주다. 이처럼 환경 친화적(?)인 캘리포니아주의 까다로운 휘발유 품질 규제 때문에 다른 주에서 석유를 가져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고품질 휘발유 고집하다 기름값 급등
결국 환경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고유가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기름값을 잡아달라고 주민들이 아우성인데 다른 주에서 품질이 낮은 휘발유를 들여올 수도 없는 캘리포니아주 당국은 꼼수를 썼다. 겨울용 혼합 휘발유를 미리 시장에 풀기로 한 것. 일반적으로 겨울용 혼합 휘발유는 11월부터 판매되는데 이를 한 달가량 앞당겼다. 정유사들이 겨울용 혼합 휘발유 생산에 들어가면 휘발유 공급량을 여름용 휘발유보다 8~10% 정도 늘릴 수 있어 기름값을 잡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겨울용 혼합 가솔린은 여름에 파는 휘발유보다 낮은 온도에서 발화돼 완전연소가 되지 않고 그만큼 오염 물질을 더 많이 배출한다. 결국 어느 정도 대기오염을 감수하더라도 기름값을 잡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한 셈이다.
이런 조치로 캘리포니아 기름값을 잡기는 했지만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다. 내년 여름이 되면 똑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휘발유 환경기준을 적용하는 한, 캘리포니아주는 공급 부족과 기름값 급등이라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캘리포니아 기름값 대란은 우리 입장에서도 환경과 개발이 충돌할 때 어느 쪽으로든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반면교사의 사례로 삼을 만하다.
[박봉권 매일경제 뉴욕특파원 peak@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