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경제, 내년 '닷컴붕괴' 스타일 리세션 올 가능성"
박병우 기자 = 경제역사나 금융사를 보면 '이번엔 다르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불황이 지속되다 호황이 찾아왔음에도 시장이 주저할 때 전문가들은 '이번엔 다르다'며 치고 나온다. 반대로 침체기를 헤매고 있는 와중에 탈출의 싹이 보일 때에도 분석가들은 이 표현을 자주 애용한다.
경기사이클 전환점을 맞히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리세션을 꼬집어내는 게 가장 어렵다고 한다. 어떤 분석가들은 줄곧 부정론만 외친다. 맞힐 때까지 계속 주장한다. 고장난 시계도 하루 2번은 정확히 시간을 맞힌다.
최근 2년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아마 "리세션이 임박했다"는 주장이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통계학적으로 '기한초과(overdue)'이다.
13일 글로벌 분석기관 롬바르드는 미국 경제에 대해 '이번엔 다르다'고 주장했다. 다만 '어느 정도(kind of...)만 다르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가계가 확실하게 빚을 갚고 대출을 늘리지 않았다. 모양새가 좋은 것이다. 문제는 기업에 약간 있다. 만약 내년 자산가격이 떨어진다면 경기 둔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000년들어 미국에서 두 번의 리세션이 출몰했다. 지난 2001년 닷컴붕괴와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이다. 닷컴붕괴의 진앙지는 기업이었으며, 서브프라임은 가계가 사고를 쳤다.
지난 2001년, 기대수익률을 잔뜩 높인 미국 기업들은 돈을 마구 발려 흥청망청 투자했다. 내부 자금으로 투자를 충당해내지 못하는 파이낸싱갭(financing gap)이 벌어졌다. 그리고 붕괴됐다.
앞서 미국 기업의 이익은 1997년 고점을 달성했다. 그런데 만화영화 '와일 코요테' 를 보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리다 어느 순간 절벽까지 지나쳐 허공에 붕 떠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때부터는 중력에 의해 밑으로 떨어져야 한다. 주식도 동반 추락한게 2001년 닷컴붕괴다.
당시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연은)가 경제구하기에 나서 살려냈다. 그러나 이 부양책의 돈은 신흥국으로 흘러들어가 다시 부풀어 오른 뒤 미국 주택으로 들어와 거품을 찍어냈다. 가계가 주도했다. 소비자는 저축한 돈을 모두 쓰고 빌려서 또 소비했다. 2007년까지 미국의 가계는 적자를 끌고 달려왔다. 다음 붕괴의 '큐(Cue)' 사인이 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상황은 ?
이에 대해, 롬바르드의 다리오 퍼킨스 연구원은 "2008년이후 가계의 차입은 과거 평균이하까지 내려오고 소득대비 부채비율은 위기 이전으로 복구됐다"고 밝혔다. 이자상환부담이 줄어든 가운데 주가와 부동산까지 올라 가계의 순자산은 늘어났다.
퍼킨스는 "그러나 돈을 빌려 주로 자사주 매입에 열중한 기업의 재무제표는 약간 음침해졌다"고 평가했다. GDP를 분모로 사용해 가계와 기업의 부채를 비교하면 더욱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퍼킨스는 "물론 미국 경제에서 아직까지 불안한 거시적 불균형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내년 자산시장에 대해 느긋하게 기다릴 입장은 아니라고 퍼킨스는 강조했다.
글로벌 자산가격은 확실하게 싼 것은 아니다.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년 물가 상승 가능성이 높다. 이는 채권수익률을 높이고 주가를 훼손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그는 설명했다.
만약 주가 급락이 현실화된다면 가계·기업의 재무제표는 다시 손상받을 것이다. 지난 2001년처럼 담보가치 하락과 악성부채 양성, 경기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그는 우려했다.
퍼킨스는 "그래도 심각한 리세션은 피할 수 있다"고 밝혔다. 통상 심각한 리세션은 가계의 과잉부채와 거품붕괴에서 출발하는데 이번엔 가계가 아닌 기업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자들의 걱정은 서브프라임이 아닌 닷컴붕괴 스타일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그는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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