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C 감산 합의 일등 공신.."부테르파 + 알팔리"
이정호 기자 = 누레딘 부테르파 알제리 석유장관의 전략은 적중했다. 지난 26일 부테르파 장관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비공식회의에서 합의를 이끌어 내기위해 고전적인 전략을 사용했다면, 부테프파 장관은 알제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OPEC 장관들이 숙박하도록 해 사실상 가둬놓아 버렸다.
OPEC 장관들은 알제 시내와 자동차로 40분 거리에 위치한 쉐라톤 호텔에 머물렀다. 이들의 방은 2개 층에 모두 밀집돼 있었다. 호텔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호텔에서 OPEC 장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뿐이었다.
부테르파 장관 역시 회의기간 집을 떠나 이 호텔에 머물렀다. 지역 패권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을 중재하기 위해서다. 이틀 후 장관은 승리를 쟁취했다. 28일 OPEC은 8년 만에 처음으로 감산에 합의했다.
합의에는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 장관의 공도 컸다. 알-팔리는 지난 5월 새로 취임한 사우디의 에너지 장관이다. 지난 20년간 사우디 석유 장관직을 역임했던 알리 알-나이미가 사임하자 이른바 '아람코 맨'이던 그가 장관으로 취임했다.
알-나이미는 지난 2014년 말부터 OPEC내에서 증산정책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알-팔리는 전 장관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 취임 초반 알-나이미 전 장관의 정책을 계승하는 듯 했지만 사우디 소식통들은 알-팔리가 알-나이미 전 장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고 입을 모은다.
알-팔리 장관은 시간이 지나자 사우디가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행보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OPEC 회원국들과의 관계회복에 나선 것이다. 특히 그는 지난 6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OPEC회의에서 이란, 베네수엘라와의 관계 회복에 집중했다. 그는 비공식 채널을 통해 카타르, 알제리, 러시아, 이란과 꾸준히 의견을 교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역 내 패권을 놓고 대립하는 사우디와 이란의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재정상황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사우디에게 공조 감산이 절실했지만 이미 서방의 제재로 인해 원유의존도가 낮아진 이란은 유가가 더 하락해도 아쉬울 것이 없는 입장이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이란은 줄곧 "사우디의 산유량을 하루평균 1000만배럴 이하로 줄여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면서 자국은 하루 평균 최소 420만배럴까지 증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사우디는 이란의 산유량은 하루 평균 360만배럴로 동결돼야 한다고 맞섰다.
하지만 회의 전날 알-팔리 장관의 통큰 양보가 있었다. 이날 알-팔리 장관은 "이란이 상식적인 범위 내에서 최대치로 생산할 수 있게 해 줘야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우디의 화해 제스처에 이란의 태도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해당사안에 정통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OPEC장관들이 28일 최종회의에 참석할 때까지만 해도 감산 범위는 하루 평균 20만~40만배럴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날 비잔 남다르 잔가네 이란 석유장관은 회의에 참석에 앞서 한 가지 신호를 보냈다. 그는 기자들에게 "이번회의는 정책을 최종결정하는 자리가 아니지만 오늘 큰 발전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는 입장을 내놨다.
5시간 후 OPEC 장관들은 하루 평균 산유량을 기존 3324만배럴에서 3250만~3300만배럴로 줄이기로 합의했다. 이는 감산규모가 최대 70만배럴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당초보다 감산 규모가 더 커진 것이다.
이날 알렉산더 노박 러시아 원유장관은 인터뷰를 통해 "사우디와 이란이 보다 유연한 모습으로 논의에 임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다만 과도한 낙관론은 경계해야 한다. 이번 합의는 감산의 "원칙"을 확정한 것인 만큼 아직 실제 감산이 이뤄진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합의 사안은 오는 11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정기 회의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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