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3低 기회]플라자합의와 OPEC 치킨게임..80년대의 추억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지난 1985년 9월 미국 뉴욕 맨해튼의 플라자호텔에 미국과 서독, 프랑스, 영국, 일본 등 주요 5개국(G5)의 재무장관들이 모였다. 회의를 마친 장관들은 코뮈니케를 발표했다. "달러를 제외한 통화들의 질서정연한 평가절상을 위해 협력한다." 바로 '플라자합의'이다.
당시 미국 정부는 과도한 달러화 강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1970년대말부터 시행했던 초고금리 정책 때문이었다. 수출산업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플라자호텔에서 미국 재무장관은 "의회가 보호무역 입법에 나설 조짐"이라고 위협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한 환전소 ©AFP= News1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한 환전소 ©AFP= News1
당시 합의는 일본의 필요와도 맞아 떨어졌다.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로 인해 해외 유동성이 몰려 들고 있었는데, 달러를 매도하고 엔화를 사들이는 외환시장 개입에 나서면 통화량을 긴축시킬 수 있었다.
엔화의 폭발적인 강세가 전개됐다. 그해 초 260엔까지 올라갔던 달러/엔 환율이 1987년말에는 128엔대로 추락했다. 2년이 채 되지 않는 사이에 달러에 대한 엔화의 가치는 두 배 이상으로 뛰어 올랐다. 같은 기간 우리 원화에 대해서도 엔화는 같은 폭으로 상승했다. 역사적인 엔高의 시대였다.
달러화 급락세(엔화 급등세) 속에서도 국제유가가 폭락하는 이례적인 현상이 지난 1985년 가을에도 발생했다. '3저 호황'의 신호탄이었다.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달러화 급락세(엔화 급등세) 속에서도 국제유가가 폭락하는 이례적인 현상이 지난 1985년 가을에도 발생했다. '3저 호황'의 신호탄이었다.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플라자합의가 이뤄진 지 두 달 뒤인 1985년 11월20일, 31.72달러를 찍었던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이 본격적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1986년 3월말 유가는 10달러대가 됐다. 그 다음달인 4월, 텍사스주의 한 주유소는 갤런당 '0달러'에 휘발유를 팔아 화제가 됐다.
석유수급 균형은 이미 오래 전부터 무너져 있었다. 2차 석유파동이 대대적인 에너지 소비 효율화를 이끌어 석유 수요가 기조적으로 약화했다. 반면 초고유가는 산유국들의 투자를 촉진했다. 북해의 원유생산이 급증하면서 시장에 밀려 들어왔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는 홀로 감산에 나서며 유가폭락을 막으려 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사우디가 생산을 줄이자 여타 산유국들이 증산을 통해 사우디 시장을 차지해 버렸다. 사우디는 점유율만 잃고 말았다.
유가 폭락의 방아쇠를 공식적으로 당긴 것은 OPEC의 결정이었다. 1985년 12월 총회에서 OPEC은 쿼터제를 통한 가격지지 노력을 포기했다. 카르텔이 와해된 원유시장은 완전한 '자유 시장경쟁' 체제로 돌입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생산량을 폭발적으로 늘리기 시작했다. 치킨게임이었다. 1985년말 일평균 200만배럴이던 산유량을 1986년초에 500만배럴까지 확대했다.
유가는 달러화 가치와 밀접한 상관관계로 움직인다. 달러가 쌀 때에는 유가가 오른다. 유가는 달러로 표시돼 거래되는데, 달러가 하락하면 미국 이외 국가 통화로 환산한 원유값이 싸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요가 늘어나고 유가는 상승한다.
그런데 지난 1985년 가을 이후에는 이 둘의 상관관계가 완전히 무너졌다. 달러가 기록적인 속도로 떨어지는 와중에 유가 역시 기록적인 폭락세를 나타냈다. 달러와 유가 모두 각기 고유한 수요공급 법칙이 작동한 탓이다.
低달러(엔高)와 低유가가 지극히 이례적으로 동시에 발생한 3低 현상의 배경이다.
당시의 低유가는 물가를 안정시켜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의 低금리로 이어졌다. 달러가 과도하게 떨어질까 우려해 금리인하에 주저하던 폴 볼커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경우 레이건 행정부의 강력한 압력에 못 이겨 서독과 일본의 도움을 받아 '동반 금리인하'에 나섰다.
외채를 빌려와 산업설비에 투자하면서 일본의 수출시장을 잠식해 가던 우리 같은 자원빈국에게는 천혜의 조건이 아닐 수 없었다.
'단군이래 최대 호황'을 이끌었던 당시의 '3低 현상'은 지금 유사한 구도로 펼쳐지고 있다. 2차 오일쇼크에 따른 초고유가가 유가 폭락으로 이어졌던 것처럼,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직전의 유가 폭등세 역시 미국 셰일오일 산업을 번창시켜 초저유가를 야기했다. 그 과정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맡은 방아쇠 역할은 30년전과 똑같았다.
올해 봄 제이컵 류 미국 재무장관은 본격적으로 뛰어 오르는 엔화가치를 두고 "질서정연하다"고 말했다. 역시 30년전 플라자합의 때 사용되었던 바로 그 용어다.
kirimi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