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저우샤오촨의 고민, '채권시장 과열' 증시 전철 따를까

김지현회계법률번역 2015. 11. 27. 12:20

조선비즈 | 오광진 중국전문기자 | 2015.11.27 07:53

 

저우샤오촨 인민은행 총재가 직접금융을 키우려 하지만 증시에 이어 채권시장도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어 고민에 빠져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블룸버그

 

저우 총재 “채권 시장 5년 내 2.5배 키워야하는데”

과열 용인했다가는 증시 거품 붕괴 꼴 날까 걱정

 

저우샤오촨(周小川) 중국 인민은행 총재가 고민에 빠졌다. 은행 대출과 같은 간접금융에 의존한 금융체제를 주식과 채권발행 등 직접금융이 함께 주도하는 금융체제로 바꾸려고 하지만 증시에 이어 채권시장도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어서다.

 

채권 시장의 과열을 용인하는 것은 증시의 거품을 용인하는 바람에 시장이 붕괴되는 혼란을 겪은 과정이 되풀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증시 거품 붕괴가 증시를 키우기 위한 개혁에 차질을 준 것처럼 채권 시장의 과열이 되레 직접금융을 키우려는 금융개혁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향후 5년 내 채권 시장 2.5배로 키운다

 

저우 총재는 지난 25일 인민일보 기고문을 통해 향후 5년간의 금융체제 개혁에 대한 청사진을 공개했다. 비(非)금융기업들의 자금조달에서 직접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을 2014년 17.2%에서 25%로 끌어올린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채권시장 규모(잔액 기준)를 국내총생산(GDP)와 같은 수준으로 키운다는 목표도 함께 내놓았다.

 

야오위둥(姚余棟) 인민은행 금융연구소장은 이날 경제참고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채권시장 규모를 GDP 수준으로 높인다는 건 현재 40조 위안(약 7151조 2000억원)인 채권시장을 100조 위안(약 1경7878조원)까지 끌어 올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2020년 중국의 GDP가 100조 위안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채권시장을 5년내 2.5배 수준으로 키우겠다는 야심찬 구상인 셈이다.

 

채권 거품붕괴 리스크 커져

 

외견상 중국 채권시장은 저우 총재의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이다. 올들어 11월 중순까지 중국에서 신규 발행된 채권 규모는 11조 위안( 약 1966조 5800억원)에 달했다.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작년 한햇 동안의 신규 채권 발행 규모(7조 7000억 위안)를 이미 웃돌았다.

 

중국에서 기업들은 10년 전만 해도 자금 조달의 대부분을 은행 대출에 의존했다. 지금은 중국 기업들이 5위안을 대출 받을 때마다 1위안을 채권 발행을 통해 조달한다는 게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의 추산이다. 중국은 이미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위 채권시장으로 부상했다.

 

직접금융 비중이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다. 야오 소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중국은 간접금융 위주의 경제체제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주요 리스크가 은행에 집중된다. 일부 리스크는 은행 스스로 야기한 게 아니다. 실물경제의 리스크가 은행에 전이되는 것이다. 직접금융을 키워 간접금융과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시키는 게 필요하다.”

 

문제는 “올들어 중국 채권 시장에 거품이 생기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는데 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생겨난 중국 기업의 회사채 디폴트가 올들어선 최소 6건 보고됐다.

 

회사채 디폴트가 늘어나면 투자자들은 채권을 매입할 때 리스크 프리미엄을 요구한다. 위험하닌까 더 싼 가격에 채권을 매입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채권의 수익률 상승으로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이 같은 상식이 지금 중국 시장에선 통하지 않는다.

 

회사채-국채 수익률 차이 줄어드는 기현상

 

지난 9월말 중국 최대 상장 부동산업체인 완커(萬科)는 5년 만기 회사채를 3.5%의 금리에 발행했다. 일부 지방정부 채권과 같은 수준이다. 부동산 경기둔화로 리스크는 커지고 있지만 정부 수준의 신용을 투자자들로부터 인정받았다는 얘기다.

 

완커만의 얘기가 아니다. 올들어 회사채와 국채 수익률 격차가 줄어드는 현상이 뚜렷하다. 우량 신용등급을 받은 회사채 기준으로 최근 5년간 이들 회사채의 수익률은 국채 금리에 비해 평균적으로 약 2%포인트 높았지만 이달초 수익률 차이가 1.3%포인트로 줄었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지적이다. 내년 채권 수익률은 0.5%포인트 추가 인하될 것으로 핑안(平安)증권이 최근 전망했다. 인민은행이 작년 11월 이후 6차례 금리를 내리는 등 잇단 통화완화 정책을 펴고 있어서다.

 

중국에서 ‘경기둔화-디폴트 증가-채권 수익률 상승’ 공식이 통하지 않는 건 지난 6월 이후 중국 증시 거품이 붕괴되면서 적지 않은 자금이 채권시장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회사채와 국채 신용등급을 비슷한 수준으로 간주하는 투자자들의 맹목성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당국이 회사채 디폴트를 용인하기 시작했지만 중앙정부가 상당한 지분을 보유한 국유기업의 디폴트는 막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투자자들 사이에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대마불사(大馬不死)다. 최근 20억 위안(약 2조 4300억원)의 만기 회사채 원리금을 갚지 못해 디폴트 위기에 처했던 중국 국유 철강 거래업체 사이노스틸이 사실상 정부 개입 덕에 만기를 12월16일로 연장하는 데 성공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좀비기업 퇴출 ‘속도’가 관건

 

중국에서도 고위관료들이 적자 상태에 빠져 지속경영이 어려운 이른바 좀비기업들의 퇴출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유기업도 타깃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로서는 디폴트 러시가 자칫 채권시장 육성에 발목을 잡을 까 우려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 당국이 좀비기업의 운명을 시장에 완전히 맡기기 보다는 속도 조절을 하면서 회사채 디폴트를 용인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다. 중국 공업정보화부 관계자는 최근 중국경제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유기업 개혁이 퇴출보다는 인수합병을 통한 구조조정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같은 행보가 회사채를 발행하는 기업이나 회사채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데 있다. ‘보이지 않는 정부의 보증’에 기대는 것이다. 시장의 자원배분 역할이 저해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기둔화속 디폴트가 늘고 있는데도 채권 시장이 과열투자 양상을 빚는 배경이다.

 

시장의 과열은 지속가능한 발전의 장애물이 된다. 중국 증시의 거품붕괴 과정이 이를 이미 입증했다. 중국이 키우는 직접금융의 주요한 축이 증시다. 이를 위해 정부가 선별적으로 허가를 내주는 신규 기업공개(IPO)제도를 등록제로 전환하는 개혁이 당초 올해 시행될 예정이었다. 보다 많은 기업들이 증시를 통해서 자금조달을 할 수 있는 길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직접금융을 키운다는 명분으로 증시 과열을 용인했다. 속도 조절 신호를 너무 늦게 내보냈다. 결과는 증시 거품 붕괴였다. 4개월 간 IPO가 잠정 중단되고 IPO 개혁도 연기됐다. 빨라야 내년 3월에 IPO 등록제가 실시될 것이라는 관측이 중국 언론에서 나온다..

 

채권 시장도 증시의 전철(前轍)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채권 시장 육성 역시 증시처럼 진입 장벽을 낮추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채권 시장 과열이 거품으로 이어지고 증시처럼 붕괴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면 채권 시장의 개혁도 늦춰질 수 밖에 없다.

 

결국 채권시장을 키워야 하지만 과열은 막아야 하는 숙제가 저우 총재의 어깨에 올려져 있는 것이다. 숙제 보따리엔 ‘조금 더 과감한 회사채 디폴트의 용인’이 포함돼 있다. 대마불사 관행을 깨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시장화 개혁 성공의 관건은 시장주체에 더 많은 자율권을 주는 동시에 책임의식을 키우도록 하는 데 있다. 자기가 투자한 회사채가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을 깨달을 때 투자자의 책임의식이 커진다.

 

하지만 디폴트가 급격히 늘어날 경우 금융의 속성상 충격이 실물경제로 전이될 수 있다. 우량 기업마저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길이 힘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좀비기업 퇴출도 속도조절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증시와 채권시장 발전을 통한 직접금융 육성이라는 모토는 저우 총재가 2002년 인민은행 총재를 맡기 전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주석 시절부터 내세웠다. 중국의 경기둔화가 지속되면서 저우 총재의 고민도 갈수록 깊어질 것 같다.